서 설 (瑞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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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의알프스 댓글 2건 조회 2,454회 작성일 17-12-22 20:26본문
서설(瑞雪)
아침 6시반 일어나 커튼을 제치니 바깥세상이 은백의 하얀 雪國으로 변해있다.
말 그대로 첫눈 같은 瑞雪이다.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니 찬 공기는 견딜만하다. 우선 아파트우리라인 입구가 경사가 약간 져서 미끄러울 것 같아서 부러진 나뭇가지 몇 개를 모아들고 쌓인 눈을 쓸어 다니기 좋게 해놓고 기분 좋은 마음에 아파트 밖 한적한 눈길을 걸어 보았다. 순백의 티끌 하나 없는 길이다. 지난달 “명심보감” 강좌 시간에 배운 아래 글귀가 생각나서 더 똑바로 걸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 서산대사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의미 깊은 한시다. 과연 내가 과거에는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왔지? 하고 잠시 되돌아 본다. 최소한 내 가족들에겐 성실한 가장으로의 삶을, 밖으로는 큰 굴곡 없는 보통사람의 삶으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람”이란 말을 들으며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였다.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며칠 후인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옛날에 본 “Love story”영화에서 남녀 두주인공이 눈밭을 오가며 뒹굴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 전에 읽은 김진섭님의 “白雪賦” 수필에는 흰 눈을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속에 포근히 안기고”라고 읊조린다. 詩心이 부족하고 筆力이 모자라서 나만의 흰 눈의 讚辭를 못 찾고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눈으로 차량 정체가 더 해 질것이고 사고도 발생하고 보행로도 미끄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갈 일이 있다면 해가 퍼진 이후에 느지막이 길을 나서게 된다. 또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방한복과 털장갑을 꺼내놓고 김장을 생각하게 된다. 때론 눈길에 운전하며 힘들게 생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마도 덕수궁 돌담 길과 남산타워, 창덕궁 비원 같은 곳은 연인들의 약속의 만남장소로, 옛추억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부부들도 북적이리라.
진보니 보수니 너무나 어수선하고 매일 구속영장 청구라는 답답한 뉴스를 봐야 하는 이즈음 잠시나마 흰 눈으로라도 온 사물을 깨끗이 덮어주니 마음까지 淸淨해진다. 복지관의 배움터에서 황혼인문학, 여행영어, 한문서예의 수강과, 청솔회 봉사모임 등을 통해 아주 작은 목표를 향하여 새 친구들, 선배님들과 交遊하며 배우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올해가 다 가고 있다.
나의 인생에서도 나는 낙엽 지는 가을에 와있다. 나무도 겨울을 나기 위해 낙엽을 버리듯 나는 나를 비우며 無慾의 삶을 사는지 되돌아 본다. 지금 똑 바로 걸으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의 里程標가 되게 살아가는가 말이다. 오늘 내린 이 瑞雪은 해가 뜨면 녹아 없어져도 항상 눈길 밟는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 가야 할 것이다. 정신적으로 나마 부자가 되고 마음에는 감사를 담아 나누는 후반전의 인생길이 되도록 묵묵히 곧게 걸어갈 것이다.
2017. 12. 21 한문서예A반 碧石 崔鍾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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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돌이님의 댓글
행돌이 작성일
碧石, 최선생님,
새해에도 강건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바둑실, 홍성훈(행돌이) 올림
영남의알프스님의 댓글의 댓글
영남의알프스 작성일
항상 수담실에서의 봉사와 원예꽃나무도 키우시며 수고많으신줄
알고있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