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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총리 지명]

총리설에 고개 흔들던 정세균 "국민 위해 할 일 있다면…" 수락
靑 "집권후반기 성과내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임을 감안해 달라"
野 "국회 무시이자 헌정사의 치욕"… 정의당도 "선례 없어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이낙연 총리 후임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의장은 국가 의전(儀典) 서열 2위이자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 수장이다. 그런 정 전 의장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지시를 받는 총리직으로 가게 된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민생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내각을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들은 "국회 무시이자 헌정사의 치욕"이라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을 파괴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 후보자는 20대 국회 전반기인 2016년 6월부터 작년 7월까지 국회의장을 지냈다. 국회의장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권력을 제어하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그런데 국회의장을 지낸 지 불과 1년 반 만에 문 대통령이 총리에 지명하고 정 후보자가 이를 수락하자, 정치권에선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차기 총리 후보자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지명하고 인선 배경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조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비서실장.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 책임자가 대통령 하수인으로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회의 자존심을 묵살하는 정세균(전 의장)을 규탄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은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열"이라고 했고, 정의당과 대안신당도 "선례가 없어 다소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했다. 정 후보자는 그동안 '총리설'이 나올 때마다 "국회의장 출신이 어떻게 총리직을 맡겠느냐"는 반응을 보여왔다. 그런데 결국 자신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엄격한 삼권분립 국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라고 했다.

정 후보자는 2006년 초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임시 당의장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이때도 "여당 의원 144명을 지휘하던 집권당 대표가 일개 장관으로 격(格)을 낮췄다"는 비판을 당 안팎에서 받았다.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이날 춘추관에서 직접 정 후보자 지명 브리핑을 갖고 "입법부 수장을 지내신 분을 국무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집권 후반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타이밍임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정 후보자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그런 것(국회의장 출신) 따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에 지명을 수락했다"고 했다. 그는 "종로에서 3선을 희망했지만 공식화된 것은 아니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을 극복하리라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원칙을 그토록 강조했던 문 대통령이 '상황이 다급하다'는 이유로 정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자기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해 "삼권분립 정신에 비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에는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여권 일각에서도 "(정 후보자가) 당대표, 장관, 국회의장에 이어 총리까지 맡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 후보자는 최근까지 매일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구 인왕산에 올라 지역 구민들을 만나는 등 총선 준비를 계속해 왔다. 여권 관계자는 "종로구 출마를 고심하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 후보자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결국 총선 대신 총리직을 선택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민석 기자] [이슬비 기자 s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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